《누가 이 침대를 쓰고 있었든》
Whoever was using this bed
기간
2023.12.22 (금) ― 1.27 (토)
주최 및 후원
햇빛담요재단
참여작가
오마르 미스마르(Omar Mismar), 배상순
김은정, 젤다 킨(Zelda Kin)
아트디렉터
최태호
큐레이터 및 글
김은영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최예진
장소
아트코너에이치 1-2층
관람시간
화 ―토 10:30 ―18:30
(일,월 휴관)
관람료
무료
⟪누가 이 침대를 쓰고 있었든⟫1
(...) 그녀는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두 손에 얼굴을 묻더니 울기 시작한다. (...) 우리는 침대에서 잘 때 발을 두는 곳에 앉아있다. 그곳에서 보니 누가 이 침대를 쓰고 있었든 황급히 떠난 것 같다. 이 침대를 다시 보게 될 때마다 이런 모습을 기억하게 될 것임을 나는 안다. 우리는 이제 뭔가로 들어섰는데 그게 뭔지는 모른다. 정확하게는. (...)2
삶에 일어나는 변화와 그로 인해 생겨나는 많은 선택지들은 좋든 나쁘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에 파장을 일으킨다. 기술의 발전이 전례없을 정도로 빠르게 이루어지며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환경적 변화를 가속시키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내일이나 미래같은 단어는 앞에서 인용한 소설의 구절처럼 ‘뭔가로 들어섰는데 그게 뭔지는 모르는’, 불확실성으로부터 야기된 불안감과 연결된다. 불안은 ‘... 앞에서의 불안’처럼 대상이 명확할 때에도 찾아오지만, 그 출처가 모호한 ‘처해있음으로서의 불안’으로부터도 기인하기 때문이다. 3
본 전시는 네 명의 작가, 젤다 킨(Zelda Kin), 김은정, 배상순, 오마르 미스마르(Omar Mismar)를 초대하여 어느때보다 풍요로운 (혹은 그렇게 보이는) 환경의 이면에 실재하지만 명확히 규명되지 못하는 시대적 불안의 근원과 그 형태를 가늠해보고자 시도한다.
젤다 킨은 매끈하게 위장된 현실과 모호한 미래의 두려움 간의 위태로운 마찰을 들여다본다. 줄곧 인간 존재의 불안과 무력함이라는 주제에 집중해왔던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선보이는 <Orange Eden Props> 연작을 통해 동시대가 채택한 합리주의에 의문을 품는다. 생산체계의 가속화를 멈추지 않는 현대의 진풍경을 자신의 조형언어로 풀어내는 작가는 우리가 만들고자 했던, 만들고자 하는 이상적 공간의 섬뜩함에 대해 이야기 한다. 한 개체만을 위한 낙원은 낙천적이기에 더욱 쓸쓸하고도 기이하다. 미래가 인간 중심주의의 일방적 공존 위에 세워질 수 있는가를 탐구하는 작가의 회화에는 다양한 인간, 비인간의 존재들이 확연히 드러나거나, 희미하게 사라지거나, 겹쳐져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나타난다. 이처럼 작가는 ‘무대 위 주인공처럼 인간 외 다른 개체를 소품화하는’ 인간 중심적 사고를 경계하며, 새로운 관계 맺기의 가능성을 제안한다.4
젤다 킨의 작품이 ‘인간 중심주의’라는 처해있음의 상태를 호출한다면, 김은정은 불확실해 보이는 일상 속 변화를 ‘읽어내는’ 행위 자체에 집중한다. 작가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있었던 일’을 주의깊게 관찰하고, 여기에서부터 끊임 없이 연상(聯想)되는 이야기들을 재구성하여 ‘있었던 일이지만 실제가 아니기도 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 이야기들은 작가가 을지로 작업실에서 마주한 비둘기 떼처럼 아주 사적인 이야기와 연결되기도 하고, 후쿠시마 원전사고(2011)와 같은 인적 재난으로부터 기인한,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순간의 휘하에 있기도 하다. 이처럼 작가는 손에 잡히는 일상에서 감지된 불확실해보이는 변화를 뜯어봄으로써, 개인의 경험이 사실은 아주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경험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그 역(逆)또한 가능하다는 사실을 열어보인다. 이것은 개인 지상주의(individualism)나 집단주의(Groupism)와 같이 어느 한 쪽에 치우쳐서 사회를 이해하는 관점이라기 보다, 한 개인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일들은 어떤 것이나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이를 예술가로서 ‘읽어내는’ 사람이고 싶다는 작가의 성찰이 반영된 것이다. 가령 본 전시에서 선보이는 <읽는 사람>(2022)은 작가가 북아프리카 튀니지 여행 중 본 여인을 소재로 그린 작품으로, 거대한 산과 구름처럼 부유하는 조각들, 그리고 서성이는 인영(仁影)들과 같이 불안정한 상황들을 뒤로하고 ‘읽는’ 행위에 몰두하고 있는 한 여인을 묘사하고 있다. 이 작품을 중심으로 뻗어 나가는 다양한 크기의 작품들은 ‘읽는’ 사람이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과 섬세한 관찰이 만들어 낸 또다른 이야기들이며, 시대의 흐름과 알수없는 매일의 변화로 촉발되는 현대인들의 불안을 감지함으로써 위로하는 따뜻한 마음이기도 하다.
김은정이 회화로써 일상의 변화 속 이야기들을 ‘읽어’ 내는 방식은 배상순이 사진 작업을 통해 재인식하고자 하는 역사와 개인, 그리고 복잡한 관계망에서부터 찾을 수 있는 오래된 시대적 불안의 기억과도 맞닿아있다. <샹들리에 연작 The Chandelier Series>(2015~)은 한국과 일본에서 수학하고, 양국을 오가며 작가가 인식한, 엉킨 실타래처럼 꼬인 한·일의 역사적 관계에 주목하는 사진 연작이다. 배상순은 격동의 한·일 근대사를 겪었던 80세 할머니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아, 그들의 복잡하고 지난한 인생사를 담아낼 사물로 ‘샹들리에’를 선택한다. ‘샹들리에’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강제 점령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물이기도 한데, 창덕궁에서 가장 큰 건물인 인정전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5 한국의 전통적 건축물의 높은 곳에 매달린 서양의 문물, 그리고 그것을 지휘하였던 일본의 영향력을 담고 있는 사물이 바로 샹들리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 하에 배상순은 한국과 일본의 비단을 실타래가 될 때까지 풀고, 다시 서로 얽히도록 해 마치 샹들리에를 연상케하는 형태로 재구성한다. 본 전시에서 선보이는 크고 작은 <샹들리에 연작>은 개인의 미래는 물론이거니와 사회의 미래 또한 불확실했던 시대의 여인들이 감지했던 오래된 시대적 불안의 기억을 되새기고, 또 개인과 사회의 관계망이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있는 지에 관해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배상순의 작품이 지나간 시대의 불안을 재현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한다면, 오마르 미스마르는 폭격이나 난민 위기와 같이 인적 재난 혹은 사회적 문제 상황에서 발견되는 심미적(aesthetic) 가능성을 통해 역설적으로 동시대에 예술과 정치가 맺고있는 복잡한 관계와 예술의 유효성에 대해 탐구한다. 2층에 설치된 <Give me the spark in your eyes>는 국립현대미술관 창동 레지던시를 위해 서울에 잠시간 체류했던 작가가 길에서 수없이 마주쳤던 포토부스의 조명들과 그것의 속성을 재고하는 설치와 드로잉 작업으로 구성되어있다. 어두운 공간을 가득 채운 링라이트는 크리에이터 이코노미(Creator economy)와 SNS 문화에서부터 외적 과시 욕구에 이르기까지, 동시대에서 디지털(digital) 환경이 자본주의와 결탁하는 방식을 상징하는, 작가가 선택한 새로운 유비쿼터스(Ubiqutous)적 조형물이다.6
불안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걸까? 쏟아지는 ‘충격과 공포’의 뉴스, 성과주의 사회의 압박, 그리고 24시간 연결된 세상과의 온라인 소통 창구가 사방에서 옥죄어 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정해진 것 없는 내일이지만 잠에 들고 눈을 뜨는 것을 멈출 수 없을 때, 우리는 누웠다 일어난 침대를 살피면서도 불현듯 불안감에 휩싸인다. 12월을 마무리하며, 네 명의 작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개인과 사회가 직면하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불안함을 위로한다.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 예술을 통해서.
1 미국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레이먼드 카버(Raymond Clevie Carver, 1938-1988)의 단편 <누가 이 침대를 쓰고 있었든>(문학동네, 2022)에서 차용하였다.
2 위의 책, 121.
3 마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이기상 역), (까치, 2008), 256.
4 서문에 나오는 작은 따옴표 속 내용은 각각 작가의 작업노트에서 간접 인용하였다.
5 1907년 조선의 마지막 왕인 순종의 즉위와 함께 수리된 인정전은 일본의 지휘 아래 1909년 봄, 서양문물이자 근대의 상징인 화려한 샹들리에가 달린 모습으로 공사되었다.
6 크리에이터 이코노미(Creator economy)는 개인 창작자가 자신의 창작물을 기반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생태계 또는 산업 전반을 뜻하는 말이다.
⟪Whoever was using this bed⟫1
(...) She leans over and covers her face with her hands and begins to cry. (...) We're sitting on the part of the bed where we keep our feet when we sleep. It looks like whoever was using this bed left in a hurry. I know I won't ever look at this bed again without remembering it like this. We're into something now, but I don't know what, exactly. (...)
The changes in our lives, and the many choices they create, have a ripple effect on the lives we lead, for better or worse.
At a time when technology is advancing at an unprecedented rate, accelerating social, political, economic and environmental change, words like ‘tomorrow’ and the ‘future’ are associated with a sense of uncertainty and anxiety, like the passage from the novel quoted above “stepping into something but not knowing what it is”, Anxiety can come from a clear object, such as “… the anxiety of being in front of you,” but it can also come from an ambiguous source, the anxiety of being in a situation.
This exhibition invites four artists – Eunjeong Kim, Zelda Kin, Sangsoon Bae, and Omar Mismar – to examine the sources
and forms of anxiety in our times, which are real but not clearly identified, beneath the surface of our ever more affluent
(or so it seems) environment.
Zelda Kin examines the precarious friction between a slickly disguised reality and the fear of an ambiguous future. The artist, who has always focused on the theme of anxiety and helplessness in human existence, questions the rationalism adopted by her contemporaries through the <Orange Eden Props Series>. She uses her own formative language to describe the modern scenery that continues to accelerate the production system, talks about eeriness of the ideal space that we have tried to create and are trying to create. A paradise for one individual is all the more lonely and strange for its optimism. Exploring whether the future can be built on the one-sided coexistence of anthropocentrism, the artist proposes the possibility of a new relationship.
Eunjeong Kim focuses on the act of “reading” the seemingly uncertain changes in everyday life. A reader (2022), which is presented in this exhibition, is based on a woman the artist saw while traveling in Tunisia, North Africa, and depicts a woman who is engrossed in the act of reading, leaving behind unstable situations such as huge mountains, cloud-like floating sculptures, and wandering figures. The works of various sizes that extend from the center of this work are another story of the artist’s desire to be ‘reader’ and her delicate observation, and also a warm heart that comforts modern people by sensing the anxiety triggered by the passage of time and unknown daily changes.
Through her photographic work, Sangsun Bae reads the complex link of historical and personal relationships, which are intertwined with the memories of anxieties of the past. The Chandelier Series (2015) is a series of photographs that focuses on the historical relationship between Korea and Japan, which the artist perceived as a tangled thread while studying in Korea and Japan and traveling between the two countries. She unravels Korean and Japanese silks until they become threads, and then reorganizes them into a form reminiscent of a chandelier. This evokes memories of unrest in the past and provides an opportunity to reflect on the intricate web of relationships between individuals and society.
Omar Mismar explores the complex relationship between art and politics and the efficacy of art in contemporary times through the aesthetic possibilities found in situations of human disaster or social problems, such as bombings and refugee crises. The installation and drawing work, <Give me the spark in your eyes>, reconsiders the lights of photo booths and their properties that the artist encountered countless times on the street during his brief stay in Seoul for a Chang-dong residency of the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Filling the dark space, the ring lights are the artist’s new ubiquitous sculptures that symbolize the ways in which the digital environment colludes with capitalism in contemporary times, from the creator economy and social media culture to the desire for outward display.
Where does anxiety come from? When we are bombarded with “shock and awe” news, the pressures of a meritocratic society, and online access to a connected world around the clock, when we feel like we are being pestered from all sides, when we cannot stop falling asleep and waking up even through there is no set tomorrow, when we look at the bed we have been lying in, we are suddenly overwhelmed with anxiety. To close out the month of December, these four artists, in their own ways, comfort the anxieties of the past, present, and the future that individuals and societies face.
___A space of new possibilities through art.
1 Borrowed from the title of a short story collection by the American novelist and poet Raymond Clevie Carver (1938-1988), ‘Whoever Was Using This Bed’
(Munhakdongne,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