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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출생 지속, 고령화 사회, 수도권의 인구 집중 등으로 인한 인구 소멸에 더해 지방 소멸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에서는 출생과 전입 인구 수의 관점에서 정의되는 ‘주민등록인구’를 떠나 지역에 거주하지 않더라도 지역을 생활권으로 삼는 ‘생활인구’의 개념을 도입하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지역을 바꾸는 사람은 젊은 사람, 외지사람, 그리고 바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젊음은 지역의 미래를 그리는 에너지원이 되고, 외지인은 지역민과는 다른 신선한 발상을 제공해주며, 바보는 무모함과 용감함으로 일을 실천에 옮긴다는 것이다.
<리더피아> 9월호 표지를 장식한 크리에이터 ‘리랑 온에어’의 경우도, ‘제3회 섬의 날’ 홍보대사에 위촉되는 등 캠핑을 통한지역과의 상생, 인구 유입의 측면에서 외지인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로컬 매개자로 각광받고 있다. 이렇듯 문화예술을 통해 지역의 보유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로컬 크리에이터’는 해당지역에 거주하지 않았더라도, 그 지역에 대한 관심을 갖고 진입하는이른바 ‘외지인’의 시선을 통해서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 아닐까? 이번 호에서는 그러한 맥락에서 지역과 연고가 없지만, 지역에 대한 관심과 리서치, 그리고 풍부한 콘텐츠를 통해 문화예술로 지역에 침투하는 방식을 제안하고 있는 강민형(광주 대안공간 ‘바림’ 운영자) 대표의이야기를 담아보려고 한다.
강민형 대표는 미국에서 사회심리학을 전공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예술대에서 미디어아트를 공부했으며, 약 13년간 외국에서 생활했던 국제적인 인재이다. 이런 그가 어떤 연고도 없이 예술공간을 운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광주만의 정체성’과 ‘그가 할 수 있는 것’에 관한 확신이었다. 2014년 3월 광주 동구 대의동에서 고시원으로 사용됐던 건물에 예술공간 ‘바림’을 연 강 대표는 60개에 달하는 고시원 방에서 예술 실험을 시작했다. 한국화에서 색과 색 사이가 번지듯 그라데이션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의미하는 ‘바림법’에서 따온 공간의 이름처럼, 미술과 비 미술, 서울과 지방 등 지연, 혈연, 학연 등 체감되는 ‘불편한 경계’를 자연스럽게 허무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도 함께였다.
Q. 연고 없는 지역에서 공간을 운영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제가 처음에 공간을 시작할 때 저는 다른 비서울권의 공간들과 달리 특별히 광주라는 지역성을 고려하지 않고 시작했던 것 같아요. 제가광주 사람이 아닌 것도 큰 이유겠지요. 다른 비서울권의 도시들도 그렇겠지만, 서울로 모든 것이 중앙집권화되어 있는 한국에서 자신의지역 특성을 탐구하는 일은 더욱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러나 서울 편향에 대항하면서도 서울이 아닌 지역에 있으면서는 그 지역에 편향이랄까 지역성에 집중해야 한다는 면에서 오히려 지역성에 매몰되는 것이 아닌지 하는 모순을 느낀 것 같아요. 여전히 서울 중심의 미술씬을 타파해야 다양한 예술 실천이 가능해진다고 믿긴 하지만, 그것이 지역이 가진 자산을 부각시킨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어려운 지점이었습니다. 해결 방법이라고 보긴 어려울 수 있지만, 초지역성(trans-locality)이라는 말을 자주 쓰곤 하는데요. 해외와의 교류나 서울의 씬을 우회하는 방식 등 오히려 더욱 보편적으로 미술과 미술의과제들을 다루려고 했습니다.
Q. 단일한 지역의 속성보다는 보편적으로 경험되는 세계에 주목하고 계시군요. 이를 통해 지역을 넘어 한국 미술씬의 자산도 풍부해지리라고 생각됩니다. 최근에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은 또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나요?
확실히 팬더믹 이후로 느낀 점이 많아서 양보다는 질로 움직이고 있어요. 관객으로서는 볼 것이 많이 없기에 그것이 공간으로서는 좋지않다는 걸 알지만 팬더믹을 지내면서 프로젝트를 끊임없이 많이 하기 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최근에는 ‘최소의 지정학’이라는 프로젝트가 있었습니다. 네 명의 예술가를 초청해, 지정학이라는 것의 단위를 지역이나 나라가 아닌 다른 것들로 재고해 보자는 취지였고, 네 명(김익명, 유승아, 이서영, 임인자)의 예술가들이 본인들이 주로 다루고 있는 매체나 장르의 시점에서 본래의 개념보다 더욱 확장해 주셔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두 달 간의 프로젝트 마지막에는 시민들을 위한 공공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요. 전시보다 더욱 상호 교환적이어서 시민들께 많이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전시장에 작가의 목소리보다 시민의 목소리가 많을 때 기획의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아요.
지금 현재는 여성을 위한 열린 기술랩과 공동 운영하는 기술연구모임 ‘기술 궤도 이탈’이 진행중이에요. 여름부터 11월까지 격주로 만나는 장기적인 모임 프로젝트이고, 열 명의 흥미로운 연구자들이 기술과 본인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구체적인 주제로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12월에는 이와 관련해 최종 전시 프로젝트가 있을 예정인데요. 지금은 내부적인 연구 모임이기에 시민들이 자세한 내용을 알기 어렵지만 오는 12월에 공개될 예정이니 그때 많은 분이 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Q. ‘최소의 지정학’의 성료를 축하드리며, 기술연구모임 ‘기술 궤도 이탈’도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광주에 자리를 잡은 지도 10년이 지났는데요, 바림에서 이룬 것들과 앞으로 이루고싶은 것들이 있으신가요?
네, 올해가 벌써 10년차이고, 앞으로 올 겨울이 지나면 10년을 딱 채우더라구요. 흔히들 예술 공간을 10년 운영하는 게 어렵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서울이 아닌 지역의 공간들은 오래가는 느낌도 있어요. 물론 제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요. 공간을 열고, 공간의 몇 주년을 기념하고 하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공간이 문을 닫을 때는 조용히 사라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공간은 항상 화려하게 열리면서 초라하게 닫힙니다.
바림은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씬에서 눈에 잘 띄는 공간도 아니고 나서서 무언가 예술씬에 기여한 업적도 없어 대대적인 기념을 하기에는 부끄럽고요. 그렇지만 시간이 이쯤 되니 박수 칠때 떠나는 방법도 한 번 이야기해 보고 싶긴 합니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는 가득한데, 지속하지 않아야 할 때는 또 지속하지 않는 것도 용기 같아요. 무엇이 이 공간을 지탱하게 하는가, 왜 지속해야 하는가 그런 이야기는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흔히 지역성은 다양성 보존의 측면에서 지역의 역사나 전통과 같이 고유한 것, 불변하는 것들로 제한되는 경우가 많지만, 동시대의 지역성은 강민형 대표의 표현처럼 ‘초지역성’을 근거로 확장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지역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그 의미를 확장할 수 있는 틈새들을 활용해 새로운 문화예술거점을 만들어낸 ‘바림’의 강민형 대표처럼, 문화예술로 지역에 침투하는 로컬크리에이터들로 인해 동시대 문화예술은 눈부시게 다채로워지고 있는 듯하다.
바림 홈페이지 https://barimart.word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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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 대안공간 ‘바림’ & 운영자 강민형 대표, 문화예술로 지역에 침투하기", 리더피아, 2023년 09월 01일